深い河 (Deep River)
작품 소개
모두 13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에는 각자의 사정을 가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인도 단체 여행을 계기로 이들이 모두 함께 만나게 됩니다. 소설의 중심인물은 크게 5명으로 압축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소베 입니다. 이소베의 아내는 투병 중에 사망했는데, 임종 직전 그녀는 이소베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내가 죽고 나서 꼭 다시 태어날 테니 당신이 나를 반드시 찾으러 오라.' 이런 아내의 말은 이소베의 삶에 남아서 끝내 그의 삶을 뒤흔들게 되고 이소베는 아내의 환생 흔적을 찾아 인도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두 번째 인물은 미쓰코 라는 여자입니다. 미쓰코는 이소베의 아내를 간병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대학 시절, 미쓰코는 가톨릭 신자인 오쓰 라는 남자를 장난 삼아 유혹하고 처참하게 버렸던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신학 공부 중인 오쓰를 만난 미쓰코는 이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그녀는 이혼 후 친구로부터 신부가 된 오쓰가 인도의 수도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오쓰의 흔적을 따라 인도까지 여행을 가게 됩니다. 세 번째 인물이 바로 오쓰 입니다. 가톨릭 신자인 오쓰는 대학 시절 미쓰코에게 농락당한 뒤 버려졌던 남자입니다. 한때 미쓰코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기도 했던 그는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가 신부가 되기 위한 수업을 계속 받기 시작합니다. 프랑스의 신학교에 유학해 신부가 되려는 오쓰는 서양의 가톨릭을 받아들이려 애를 쓰지만 마음속에서 끝없이 생기는 갈등으로 인해 실패하게 됩니다. 결국 오쓰는 자신만의 신앙과 신념을 품고 인도로 향합니다. 오쓰는 등장인물들과 처음부터 함께 인도 여행을 떠난 사람은 아니지만, 미쓰코가 인도 여행을 하게 된 계기가 되는 인물이며 이 소설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동화 작가인 누마다 입니다. 과거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도중 함께 키우던 구관조에게서 큰 위로를 얻습니다. 누마다는 다행히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하지만, 그가 건강을 회복하는 사이 마치 그의 생명을 대신하듯 구관조가 죽어 버립니다. 누마다는 이 기억을 잊지 못한 채 자신만의 속죄를 위해 인도 여행길에 오릅니다. 마지막은 군인이었던 기구치 입니다. 그는 태평양 전쟁 당시 미얀마에서 그야말로 극한의 죽음과 기아를 경험합니다. 기구치와 그의 동료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다른 죽은 동료의 인육까지 먹었었는데, 이런 처참한 경험을 버리지 못하고 끔찍한 죄책감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 동료들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인도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사정으로 인도 여행길에 올라 만나게 된 인물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위로하기도 하고 치유받기도 하고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내기도 합니다. 그들이 선택한 장소는 왜 하필 인도일까요. '인도에 와서 차츰 흥미를 일으킨 것은 불교가 태어난 나라 인도가 아닌, 청정과 불결, 신성과 외설, 자비와 잔인함이 혼재되어 있는 공존하는 힌두의 세계이다. 온갖 것들이 혼재되어 있는 강변에 하루라도 더 남아있고 싶었다.'
작품 후기
동양과 서양, 강자와 약자, 선과 악, 삶과 죽음의 경계가 만년의 작가에게는 이미 무의미한 것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한데 혼연히 어우러진 인류의 거대한 흐름을 부드럽게 응시하는 초월적인 존재, 모성적인 신의 세계에 작가는 마침내 당도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도 지구 한 쪽에서는 각기 다른 종교나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고 죽임을 당합니다. 한편 타 종교 간에 가로놓인 벽을 허물고 항호 이해의 물꼬를 트려는 움직임도 당연시되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시대 정황 속에서 작가의 작품은 문학의 진정성에 대한 환기와 더불어 현대인들의 정신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가치를 한층 발휘하고 있습니다. "신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계십니다. 유럽의 교회나 채플뿐만 아니라, 유대교도에게도 불교도에게도 힌두교도에게도 신은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신(신이라는 단어가 거북하다면 '토마토'나 '양파'같은 단어로 바꾸어도 좋다)은 곧 사랑이며, 이 '양파'는 어떤 종교에나 존재한다고 말하는 오쓰. 이러한 오쓰의 사고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범신론적인 과오'로써 비판받고 위험하게 치부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기독교에 대한 관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이란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고 화초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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