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 Visconte Dimezzato
간략한 내용 소개
1952년에 발표한 '반쪼가리 자작'은 17세기에 터키와의 전쟁에 참가했던 테랄바의 메다르도 자작의 이야기입니다. 메다르도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대포를 쏠 줄도 모르면서 무모하게 터키인의 대포에 뛰어들어 몸에 산산조각 나고 맙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살아있는 자작의 반쪽을 야전병원 의사들이 이리저리 꿰매어 자작은 반쪽짜리 인간으로 고향에 돌아옵니다. 하지만 이 반쪽은 자작의 악한 부분만이 남아있는 '악한' 반쪽으로, 온갖 악행을 저질러 그 고장 사람들을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합니다. 그가 우연히 파멜라라는 소녀를 사랑하게 되어 구애를 시작할 무렵, 자작의 '선한' 반쪽이 마을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선행을 베풉니다. 그 역시 파멜라를 사랑하게 되고 이제 마을 사람들은 극도의 선과 악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극단적인 '악'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선' 또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편 두 반쪽 모두에게 구애를 받은 파멜라는 두 반쪽 모두에게 결혼을 약속합니다. 그동안 한 번도 정면으로 대면한 적이 없던 두 반쪽이 드디어 결혼식장에서 만나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도달합니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가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는 도덕적인 것입니다. 그는 반쪼가리가 된 메다르도를 통해 도덕적으로 분열되고 상처받고 소외된 현대인들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반쪽이 된 불완전한 인간, 자기 자신을 적으로 가진 인간은 바로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반쪼가리 자작은 마스크르식으로 말하자면 '소외된 인간'이고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억압받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반쪼가리 인간들은 자작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작품 속에서 반쪼가리 메다르도만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악한' 반쪽의 폭정과 '선한' 반쪽의 지나친 선행에 시달리는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의사의 본분을 잊고 '순수한' 탐구에만 몰두하는 의사 트렐로니, 자신이 만드는 도구들이 살인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피에트로키오도, 탐미적이며 무책임하고 하루하루의 삶을 쾌락에 바치며 방탕한 행복을 추구하는 문둥이들, 진정한 종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며 종교 윤리만을 강조하는 위그노들. 이들은 겉모습으로는 완전하지만 자작처럼 반쪼가리 인간들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바로 우리 현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칼비노는 원자탄을 만들었던 현대 과학자들을 피에트로키오도에 비교하며, 무책임한 유미주의에 빠진 문둥이들을 문학적, 예술적 데카당스에 빠진 현대 예술가들에게 비유합니다. 결국 자작은 '완전한' 인간으로 돌아오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행복한 시대가 열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완전한 인간'만으로는 복잡한 현실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칼비노는 환상이나 동화라는 요소를 현실 도피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것은 17세기말에 벌어진 오스트레일리아와 터키 사이의 전쟁입니다. 또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아직 선과 악을 분명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자작의 어린 조카의 눈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 덕분에 무거운 주제를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칼비노는 문학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을 '즐거움'에 두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동화라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한 비평가는 칼비노의 작품은 겉으로 보기에는 밝게 빛나는 따뜻한 남빛 바다 같지만 한번 그 속에 뛰어든 사람은 금방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 검은 협곡들과 어두운 동굴과 괴물 같은 물고기들과 해초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p.119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두 반쪽이 재결합 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한 생활을 했고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올바른 통치를 했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피에트로키오도는 사형대를 만들지 않고 물방아를 만드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트렐로니도 홍역과 단독 때문에 도깨비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반면에 나는 완전한 열정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항상 부족함과 슬픔을 느꼈다. 때때로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젊기 때문이다. 나는 사춘기의 문턱에 다다랐다. 그래서 계속 커다란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고 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솔잎은 내게는 기사나 귀부인이 되어 주었고 광대가 되기도 했다. 나는 그 솔잎들을 내 눈앞에서 움직이면서 끝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혼자 흥분했다. 그 후에 나는 이런 환상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트렐로니마저 나를 떠나는 날이 왔다. 어느 날 아침, 우리 만에 영국 국기를 높이 매단 함대들이 와서 정박했다. 테랄바의 사람들이 모두 그걸 보러 해변으로 나갔는데 나만 그 사실을 몰랐다. 선원들이 배 난간과 돛에 매달려 파인애플과 거북이를 보여 주었다. 그들은 라틴어와 영어로 크게 쓰인 두루마리 종이를 펼쳤다. 삼각 모자와 가발을 쓰고 뒤쪽 갑판에 서 있는 장교들 중간에 쿡 선장이 있었는데 그는 쌍안경을 가지고 해변을 지켜보았다. 그는 멀리서 트렐로니를 발견하자마자 명령을 내려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깃발을 내걸어 소식을 전하게 했다. "트렐로니! 빨리 와서 배를 타시오! 우린 카드놀이를 계속해야 하오!" 트렐로니는 테랄바의 모든 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선원들은 노래를 불렀다. "아! 오스트레일리아!" 선원들이 칸카로네 포도주 통을 타고 앉은 트렐로니를 배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배는 닻을 올렸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느라고 숲에 숨어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고 소리를 지르면서 해변으로 달려 나갔다. "트렐로니! 트렐로니! 나도 데려가줘요! 날 여기에 내버려 두지 마세요, 트렐로니!" 그러나 이미 배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나는 여기 이곳, 의무와 도깨비불만이 가득 찬 우리들의 세계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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