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Colmena
작품 해설
이 작품은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대의 마드리드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내전 직후 파시스트 세력에 대항했던 많은 사람들은 죽거나 망명길에 오르고, 살아남은 자는 단순히 살아남은 것에 만족하며 지극히 건조함으로 위장한 채 암울하게 살아갑니다. 그들 가슴속에 남은 유일한 것은 앞으로 다가올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입니다. 오늘의 삶은 버겁고 내일의 삶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나는 이 막연한 두려움에 대해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그림자만을 차갑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작품은 뚜렷한 줄거리가 없습니다. 차가운 렌즈에 잡힌 마드리드의 모습을, 도냐 로사의 카페를 중심으로 여러 인간군상의 다양한 모습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페를 중심으로 떠도는 인간들의 모습을 별다른 주인공도 없이 여러 가지 각도에서 비춰주는 것입니다. 고단한 노동자와 일을 찾아 헤매는 실업자들, 동성애자, 창녀, 하위직 공무원, 거리의 악사 등 이 작품에 드러난 인물들은 대부분이 사회 중심에서 밀려나 유령처럼 도시를 떠도는 주변인들입니다. 물론 중심인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전체적인 비중으로 볼 때 마르틴 마르코를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한때 대학에 다니고 글을 썼던, 그래서 프랑코로 상징되는 파시스트 세력과는 어울릴 수 없어서 더 불행하고 슬픈 그의 모습에서 당시 지식인들의 암울한 일면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인이라는 마르코 역시 주변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영위합니다. 어찌 보면 그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보다 더 형편없이 살아갑니다. 누나와 대학 친구, 그리고 뚜쟁이를 하는 엄마 친구 등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면서도 그는 지식인으로서 과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다지 깊은 고민을 보여주지도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마르코도 마드리드를 떠도는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말했듯 이 소설은 특별한 사건이나 줄거리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각각 독립적인 에피소드들이 작은 방처럼 연결되어 하나의 커다란 벌집을 이루는 것과 구조가 똑같습니다. 눈길을 끌만한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동성애자의 어머니인 마르고트의 죽음이나 바람을 피우는 돈 로케와 연애 중인 딸이 같은 장소에서 마주치는 사건, 그리고 누군가 이를 이용하려는 음모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 역시 전체 줄거리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조금 큰 방을 차지한 일화에 불과할 뿐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1940년대를 전후한 스페인 마드리드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즉서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을 병렬적으로 늘어놓는 구조를 택한 것입니다. 도냐 로사와 마르코를 중심으로 하고, 주변 인물들의 삶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특정 개인에게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제목 그대로 '벌집'과 같은 당시 사회 공동체에 확실하게 무게중심을 놓고 있습니다. 마르코는 주변 사람들의 온정을 토대로 마지막 희망을 찾으려 합니다. 즉 뭔가를 새롭게 해 보겠다고 결심하지만 결국 그가 이 결심을 실행이 옮길 수 없도록, 수배라는 새로운 암시를 던지며 작품은 막을 내립니다. 더욱이 여기에서의 수배는 그 원인도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희망이 또 다른 절망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주면서 결말을 맺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희망의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 애인과 결혼하기 위해 남편의 죽음을 기다리는 여인, 재산상속을 위해 처형의 죽음을 기다리는 남자, 신분이 괜찮은 유부남과 딸이 결혼할 수 있도록 본처의 죽음을 간절하게 바라는 여인들의 모습 등을 통해 희망은 간간이 얼굴을 내밉니다. 하지만 희망이 언제나 남의 불행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암울해집니다. 배경이 되는 1940년을 전후한 마드리드는 독재라는 악령이 무겁게 짓누르던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막연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이 해코지를 할지 모르는 사회에서 인간은 한없이 소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움과 소심함은 또다시 이웃에 대한 무관심으로 연결됩니다. 나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그 집합은 하나로 응집될 수 없는 모래알 같은 사회가 되고 맙니다. 이웃이 끊임없이 고통스럽고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관심이 없는 사회, 누군가 죽어 가도 종이 울리지 않는 사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너무나 평범해서 자기 자신의 삶조차 버거워하는 인간들, 눈에 보이는 전체주의에 대한 두려움에 자꾸만 움츠러드는 인간들, 과연 지향해야 할 미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 질문하거나 깊이 고민하지 않는 인간들, 결국 삶에 대해, 세계에 대해 아무 의식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간들. 이들은 결국 인간세계를 '희망이 단절되고 어둠만 가득한 세계일 뿐'이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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