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mez-vous Brahms...
줄거리
캄캄하고 어두운 방, 홀로 남겨진 서른아홉의 실내 장식가 폴은 오늘따라 자신의 방이 한없이 허전하고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폴에게는 5년이라는 오랜 시간 함께 지내온 연인 로제가 있지만, 구속을 싫어하고 책임을 벗어나고 싶은 자유분방한 로제는 자신이 내킬 때만 폴을 만나며 연인으로서 할 수 있는 형식적인 의무만 다 할 뿐입니다. 로제를 향한 폴의 일방적인 감정은 날이 지날수록 그녀에게 더욱 깊은 고독만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매일 밤 로제를 기다리는 것이 삶의 중심이 되어버린 폴을 외롭게 내버려 둔 로제가 향하는 곳은 젊고 아름다운 다른 여자의 집이었습니다. 바람둥이 로제는 폴을 사랑하지만 자유로운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다른 여자와의 하룻밤은 짜릿하기만 했습니다. 폴은 자신에게만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는 로제의 자유분방한 삶이 불만이면서도 로제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라고 스스로 자기 최면처럼 되새길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은 자신에게 인테리어를 의뢰한 집에서 스물다섯 살의 청년 시몽과 만나게 됩니다. 잘생긴 외모에 신비로운 분위기의 시몽은 우아한 모습의 폴에게 첫눈에 반해버렸고, 폴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시몽은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합니다. 그날 저녁, 폴은 로제와 함께 클럽에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시몽을 마주치게 됩니다. 폴의 곁에 있는 연인 로제의 존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노골적으로 관심을 드러내는 시몽. 그런 시몽의 태도에 폴은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다른 한편으로는 신선한 호기심을 느낍니다. 시몽 역시 폴에게 오래된 연인 로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로제가 폴을 두고 다른 여자들을 만나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폴에게 다가갑니다. 어느 날, 폴에게 시몽으로부터 편지가 한 장 도착합니다. '오늘 6시에 프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폴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했던가..' 그녀는 요즘 책 한 권을 읽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건 다 제쳐두고 긴 세월 동안 늘 부재중이던 한 남자, 로제만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시몽이 던진 이 짧은 질문에 폴은 시몽에 대한 생각이 아닌 자신의 내면의 질문들에만 집중하며 자신이 한참을 잊고 살았던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나를 되찾기 위해 좀 더 노력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돌아갈 수 있어요. 그건 당신에게 달렸어요. 시몽은 나를 무관심하게 방치해 두지 않아요." 로제가 자신을 붙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폴은 이야기하지만, 시몽과 비교당하는 것 자체에 자존심이 상한 로제는 오히려 폴을 비난합니다. 결국 폴은 로제에게 이별을 고한 후 자신을 아껴주는 시몽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고, 시몽은 폴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녀에게서 로제의 그림자를 지워내려 애씁니다. 그러나 폴에게 드리워진 로제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져만 갔고 시몽은 폴을 잃을까 불안하기만 합니다. 폴은 자신을 아껴주는 시몽과의 연애가 행복했지만 생기 넘치는 시몽의 젊음을 보며, 자신을 어떻게든 행복하게 해 주려는 시몽보다 폴의 행복에 무관심했던 로제에게 더 익숙해져 있었고, 시몽과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오래도록 자리한 로제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한편, 로제 역시 폴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룻밤 쾌락을 즐겼던 여자들과의 만남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았고 자신을 떠난 폴이 그립기만 했습니다. "내가 너무 경솔했어. 여자들을 조심했어야 했는데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나를 버리고 간 당신의 선택을 원망하지 않아. 우리 다시 시작하자." "그래.. 그래, 그러자." 폴은 이상하게도 로제의 익숙한 체취와 담배 냄새에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드는 동시에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폴과 시몽은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이별을 준비했습니다. 폴의 집에 남아있던 자신의 흔적을 하나 둘 정리하며 짐을 싸던 시몽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폴의 집에서 뛰쳐나가고 그런 시몽의 뒷모습을 보며 폴은 흐느낍니다. 폴과 로제가 다시 만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립니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폴은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미안해. 일 때문에 늦을 것 같아."
청춘이 사라지는 순간은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마지막 장면이 매우 기억에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서른아홉의 폴이 스물다섯의 시몽과 이별을 선언하고 다시 전 연인인 로제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자마자, 아주 익숙한 반복과 권태를 느끼는 장면. 아무리 자신에게 고통을 줄지라도 결국 익숙한 상대에게 쉽사리 안주하고 마는 폴. 이 책의 제목은 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뒤에 물음표가 아닌 말줄임표가 붙어 있을까요? 폴에게 다가가는 시몽의 마음과,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다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되는 폴. 어쩌면 저 질문은 현실에 안주한 폴에게 주어진, 새로운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선택의 질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폴이 들려준 몇 마디 말만으로도 시몽은 지난 열흘 동안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로제의 무관심, 시몽에 대한 그의 빈정거림, 그녀의 외로움 같은 것들을. 폴은 이 공백 기간 동안 로제를 되찾고자 애썼다. 적어도 다시 로제와 만나, 다시 그와 화합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흥분한 어린아이 같은 로제를 발견했을 뿐이었다. 자신을 낮추는 그녀의 노력은 감동적이었다. 로제가 즐기는 저녁 식사, 그가 좋아하는 드레스, 그가 유쾌해하는 대화 주제 같은, 우스꽝스러운 방법처럼 보이지만 지적인 여성이 활용한다면 그 무엇보다 효과적인 것이라고 여성지에서 추천하는 온갖 방법들이 이번에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런 방법을 동원했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 "로제, 당신의 잘못이 날 불행하게 만들고 있어.", "로제, 이대로는 안 되겠어." 같은 말들을 교묘한 조명이나 연한 양고기로 대체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여성 특유의 반사적 반응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쓰디쓴 체념에서 나온 결과도 아니었다. 그랬다, 그것은 차라리 '그들 두 사람'에 대한, 그들이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일종의 가학인 셈이었다. 두 사람 중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이제 이만하면 충분해."라고 외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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