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 Poker
작품 소개
이 소설집에는 총 열두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구성은 서문과 열한 편의 짤막한 단편이지만 '일곱 가지 실험 소설'에 일곱 편, '감지 렌즈'에 세 편의 소설이 부록처럼 따라붙어 있어 엄밀히 따지만 스무 편의 소설입니다. 처음은 '문'이라는 서문으로 시작됩니다. 마치 작가가 문을 열고 상상력의 세계로 들어오라고 하는 메타포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약 여섯 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 서문은 상당히 신비롭습니다. 의식의 흐름처럼 서사의 연결 고리가 없이 여러 편의 동화가 한데 얽히어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재크와 콩나무'인데 흥미롭게도 뿌려 놓은 콩 줄기를 타고 거인 오게르를 죽이러 하늘로 올라간 재크의 의식이 어머니의 의식으로 옮아가면서 '빨간 모자'와 '미녀와 야수'로 상황이 바뀝니다. 곧이어 할머니의 시점과 빨간 모자의 시점으로 내적 독백이 흐르고 모든 동화가 한데 얽히어 재현됩니다.
일곱 가지 실험 소설 (Seven Exemplary Fictions)
돈키호테는 이발사의 면도 대야를 보자마자, 그것이 진정한 용사에게만 주어지는 전설 속 맘부리노의 황금 투구라고 외치며 이발사에게 돌진합니다. 쿠버는 이런 돈키호테를 창조한 세르반테스의 실험적인 능력을 칭송하며 작가란 모름지기 돈키호테처럼 이발사의 면도 대야를 맘부리노의 황금 투구로 변신시킬 줄 아는 안목과 용기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쿠버는 일체의 현실을 자신의 상상력과 동화시키는 돈키호테의 순수한 용기를 부러워하며 자신이 그런 열정으로 특이하고 다양한 기법의 일곱 가지 단편을 내놓겠다고 선언합니다. '패널 게임'은 매스미디어에 중독된 현대인의 맹목적인 군중심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이 죽는 것도 모르고, 혹은 타인을 죽이는 줄도 모르는 우매하고 야비한 방청객들과 그들의 놀잇거리로 차출되어 교살당하는 어리석은 출연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생각 없는 대중들에 대한 힐책이 담긴 내용은 이 작품집에 여러 편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도보 여행자' 또한 주체와 외부 세계와의 교호 할 수 없는 심연을 잔인할 정도로 객관적으로 묘사했습니다. '형'과 '요셉의 결혼'은 성서를 패러디한 단편입니다. '노아의 방주'와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을 재현하며 평범한 인간이 겪는 신으로부터의 소외를 다룹니다. 노아의 동생은 혼신을 다해 형이 방주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지만 정작 홍수 자체를 의심한 대가로 방주에 오르는 것을 거절당합니다. 서술자는 노아의 무정함과 홍수 속을 미친 듯 헤매고 다니는 동생의 비애를 객관적으로 묘사합니다. 이런 서술은 '요셉의 결혼'에서도 이어집니다. 요셉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아기를 잉태한 것이 부조리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신의 의지가 개입된 성스러운 일이라도 마리아의 남편으로서의 삶은 그늘지고, 외롭고, 답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특히 사랑 행위를 원하는 그의 욕망이 끝없이 좌절당하고 연기되면서 결국 꿈에서밖에 아내를 안을 수 없는 요셉의 비련은 독자들에게 그저 당연하기만 했던 그늘 속에 가려진 인물을 재고해 보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쿠버의 단편 중에서 서사 기법의 탁월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은 '베이비시터'와 '리 죽다'일 것입니다. 두 작품 모두 퍼즐을 끼워 맞추듯 서사적 현실을 독자 나름대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베이비시터'는 아이를 돌보러 온 젊은 베이비시터와 그녀의 남자 친구, 파티에 간 주인집 부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이 한데 얽혀 기묘한 태피스트리를 짜냅니다. 베이비시터를 성적으로 유혹하려는 주인집 남자와 그녀의 남자 친구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살인 사건이 교차적으로 서술되며 어떤 것이 진짜 리얼리티이고 어떤 것이 판타지인지 분간을 할 수 없습니다. 서술만 살아 움직이며 현실은 독자가 선택합니다. 이런 상황은 '리 죽다'라는 단편에서 극대화됩니다. 여기서는 소설의 첫 부분에 나온 인물과 나중의 인물이 생판 다른 인물일 뿐 아니라 아무 연관 관계도 없습니다. 서술자는 아무 내용도 없는 소설을 써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독자들에게 사죄의 의미로 서커스 티켓을 선사하겠노라 말합니다. '엘리베이터'와 '마른 남자와 살찐 여자의 로맨스'는 철학적인 쿠버의 직관력을 남김없이 드러낸 작품입니다. '엘리베이터'는 매일 출근을 위해 이용하는 인간이 만든 기계를 통해 삶, 사랑, 개념, 우연히 닥칠지 모르는 사고, 우주의 총체성, 운동성 등에 대한 관념적인 몽상을 서술자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 묘사해 놓았습니다.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마틴은 평범한 샐러리맨이지만 그의 사유는 여느 철학자나 물리학자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깊고 섬세하고 치밀합니다. 그는 인간의 부조리하고 답답한 삶을 코믹한 상상으로 전이시킵니다. '마른 남자와 살찐 여자의 로맨스'는 서커스를 배경으로 문학적 은유와 기교를 통해 남녀 간의 사랑과 인간적 삶의 아이러니를 신랄하게 풍자한 단편입니다. 쿠버는 이 소설에서 그저 유흥거리를 찾는 데 연연하는 외설스럽고 상스러운 사람들과 그들의 욕구를 자극하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기에 비겁한 술책을 쓸 수밖에 없는 서커스 단원들의 고뇌를 관찰자의 입장으로 냉정하게 묘사합니다. 쿠버는 이 둘 중 어느 한편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둘 모두를 타락했다고 봅니다. 그의 이런 식견은 이 단편집의 밑바닥에 흐르는 예술가와 독자 사이의 양립할 수 없는 불일치를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메타포에 자신을 가두고 진정한 감정은 억압해야 하는 위선적인 독백임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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