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inted Veil
어떤 내용인가요
제대로 된 사랑을 본 바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허영기 많은 아가씨 키티는 속물인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사교계에 일찌감치 데뷔합니다. 그 시절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남편의 지갑에 따라 결정되었고, 출세에 대한 의지가 박약했던 남편을 경멸했던 키티의 어머니는 남편 대신 딸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대리충족하고자 합니다. 어머니의 야심과 자신의 야심이 부합했던 키티는 젊고 예쁜 얼굴을 무기 삼아 열심히 배우자 탐색에 나서고 수많은 남자들로부터 프러포즈를 받지만 결혼시장에서 떨이로 취급되는 스물다섯의 나이까지 남편감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이제 어머니는 키티를 치워버릴 수만 있다면 상대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게 되고 급기야 키티의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상황에까지 이르자 절박해진 키티는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덜컥 결혼해 버립니다. 그 선택이 실수였음을 깨달은 것은 결혼 직후부터였습니다. 키티는 종일 재잘댈 수 있고 걸핏하면 웃음을 터뜨리는 활달하고 쾌활한 성격이었지만 남편 월터는 말주변도 없고 은둔자적 기질에 밀랍인형과도 같은 냉소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지루한 성격만큼이나 외모 역시 키티의 마음을 끌지 못했습니다. 월터는 자기 방식대로 키티를 사랑했지만 그것은 짝사랑에 가까웠고 그가 무엇을 하든 키티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식민지 홍콩에서 그런 남편을 견디며 살아가던 어느 날, 키티는 그녀의 마음을 단번에 앗아가는 남자와 마주치게 됩니다. 홍콩 총독부 차관보 찰스 타운센드는 나이는 많아도 출중한 외모와 빼어난 옷맵시, 화려한 언변을 갖춘, 누가 봐도 멋진 신사였습니다. 자신의 매력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찰스는 여자의 욕망을 읽어내는 영악함과 허영심을 자극할 줄 아는 교활함을 갖춘 바람둥이였습니다. 문제는, 사랑에 한 번도 휩쓸려본 적 없는 키티가 걷잡을 수 없이 찰스에게 빠져 들었던 반면, 찰스에게 있어 키티는 새로운 여성에 대한 친절이자 욕정의 반로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키티에게 찰스는 유일한 사랑이었기에 그와 나누는 모든 경험들이 경이로웠고 고통스러울 만큼 생생한 욕망에 전율했지만, 찰스는 그녀를 위해 그 어떤 것도 희생할 마음은 없고 찰나의 향락만이 목표였습니다. 탈선의 끝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찰스와 키티의 은밀한 만남은 남편인 월터에게 발각됩니다. 키티는 무가치한 찰스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도 좋을 남자로 여겼고, 그보다 훨씬 나은 남자인 남편을 우습게만 여깁니다. 하지만 월터는 키티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단순한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자의식 과잉과 민감한 감수성은, 통상의 외도가 가져오는 추문과 이혼의 수순이 아닌 형편없는 여자를 사랑했다는 자신에 대한 경멸감으로 자신과 상대를 파멸로 몰고 갑니다. 찰스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던 월터는, 찰스가 부인과 이혼하고 키티와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이혼해 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은 찰스를 고소하거나 키티를 콜레라가 창궐하는 메이탄푸로 데려가겠다는 선택지만을 키티에게 남겨줍니다. 키티가 얼마나 비겁하고 이기적인 남자를 사랑했는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모욕하고 결국 키티는 월터와 함께 메이탄푸로 가기로 합니다. 메이탄푸에서 의미 없는 생활을 하던 키티는 어느 날 수녀원을 방문합니다. 그곳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고 성심성의껏 봉사하며 그동안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허영의 베일을 하나씩 벗겨갑니다. 그전까지는 남편 월터를 증오하고 과소평가하고 무시하며, 그에게 미안한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았지만, 메이탄푸에서 사방에 깔린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의 삶과 가치관을 체험하고 여러 형태의 사랑을 본 그녀는, 월터가 스스로를 위해 키티의 과오를 용서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월터는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고 사라집니다.
어떤 소설이었나요
소설은 전통적 가치관 아래 자란 여성이 결혼 생활의 환상이 깨지고 외도의 아픔을 겪으면서 긍정적인 여성성을 모색한다는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는 작품에서 어리석고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불안이 애써 찾은 희망에 음울한 그림자를 던집니다. 키티는 남편 월터의 죽음 후 애증의 관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찾았다고 느끼지만,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 들른 홍콩에서 옛 애인 찰스와 다시 한 번 육체관계를 갖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키티에게 찰스는 더 이상 예전의 매력적인 애인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키티는 찰스의 욕망 앞에 순전한 욕정을 느끼며 그의 품에서 육체의 희열을 느낍니다. 그런 자신이 한심하고 혐오스럽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괴감보다는 내부의 도무지 알 수 없는 충동에 대한 혼란스러움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걷잡을 수 없는, 이성으로는 통제 불가능한 충동이야말로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속박이자 '인간의 굴레'인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는 남편 월터에 대한 키티의 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월터는 인간애와 지성을 갖춘 건실한 남자로 키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나무랄 데 없는 남편이지만 키티는 그런 월터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월터는 사회적으로 우수한 덕목을 갖춘 남자임에 틀림없지만 본능을 자극하는 사내다운 '매력'이 없습니다. 덕목이 매력 앞에 패배하고 이성이 본능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p.293 하지만 그의 굵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이제 너무 길게 자라 있었고 너무 조심스럽게 빗질되어 있었는데, 백발이 되어 간다는 사실을 숨기느라 기름을 지나치게 많이 바른 상태였다. 그의 얼굴은 너무 붉고 뺨에는 자줏빛 혈관이 비쳐 보이는 데다가 턱살은 몹시 거대했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그가 고개를 쳐들지 않으면 이중턱이 그대로 드러났다. 게다가 그 무성하고 희끗희끗한 눈썹이 어쩐지 원숭이 같아서 그녀의 비위를 살짝 거슬렀다. 그는 움직임도 무거웠다. 다이어트에 쏟아붓는 그 모든 노력과 운동량도 비만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다. 뼈를 덮은 살은 두툼해지고 관절들은 노인처럼 삐그덕거렸다. 이제 그의 멋쟁이 의복은 다소 끼어서 그가 입기엔 너무 젊은 남자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키티는 점심을 먹기 전 그가 응접실로 들어왔을 때 꽤 큰 충격(아마도 그래서 그녀의 창백함이 두드러졌을 것이다.)을 받았다. 그녀의 상상력이 이상한 속임수를 부려 그녀를 속였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머릿속에 그린 모습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았다.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을 정도였다. 그의 머리카락은 백발은 아니었지만, 오, 관자놀이에 흰 머리카락이 몇 가닥씩 보이는 데다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했던 그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린 붉지 않은 얼굴이었고 그의 머리는 목 위에 매우 보기 좋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뚱뚱하지도 늙지도 않았었다. 사실 그는 날씬한 상태에 가까웠으며 그의 몸은 찬탄을 자아낼 만했기 때문에 그가 자기 몸매를 자랑으로 삼는다고 한들 그를 비난할 수 없었다. 젊은이라고 봐도 괜찮을 정도였는데. 그리고 물론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도 잘 알았다. 현재 그의 모습이 단정하고 깨끗하고 말끔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었다. 무엇에 씌어서 그에게 빠졌던 것일까? 그는 매우 잘생긴 남자이긴 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다행히 그가 얼마나 무가치한지를 깨달았다. 물론 그녀도 늘 인정했던 바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승리의 무기였고 그의 목소리만은 그녀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그가 내뱉은 모든 말의 가식을 더욱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그 목소리. 그 풍부하고 감미로운 음성이 경박하게 그녀의 귓전을 맴돌았다. 도대체 어째서 그녀는 그의 포로가 되었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