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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서 과거로, 풀잎은 노래한다_ 도리스 레싱

by lucy831 202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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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ass Is Singing

 

사건의 전개

식민지 사회에서의 흑백 간의 갈등 문제를 탁월한 언어로 형상화한 이 작품의 플롯은 레싱이 양친과 이주해 있던 남아프리카연방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독자 투고에 의해서 신문에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피살자는 메리라는 이름의 백인 여자이며, 살인범은 바로 그녀의 집에서 일하던 모세라는 흑인 원주민입니다. 그 자체를 놓고 볼 때는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임이 분명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그 지역 주민들은 사건을 냉담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피살당한 채 테라스에서 발견된 메리에 대해 전혀 동정심을 보이지 않고, 폐인이 되다시피 한 그녀의 남편 리처드만 측은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후 모든 일을 처리했던 옆 농장의 찰리 슬래터가 평소 메리에 대해서 품고 있었던 반감은 대단했습니다. 그토록 근면했던 리처드가 메리와 결혼한 후 서서히 붕괴되면서 폐인이 되어 갔고 그 모든 책임이 메리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메리는 슬래터를 비롯한 그 지역 주민 대다수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여자였을까요? 메리가 흑인 원주민의 손에 피살당하기까지 과연 어떠한 일들이 있었으며 그 일들과 그녀의 죽음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이야기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들의 과거

주정꾼 아버지와 궁핍한 경제 사정 때문에 항상 부부싸움을 벌이는 어머니 사이에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메리는 그때의 쓰라린 기억을 안고 직장 여성으로서 자리를 잡아갑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종적이 묘연해지면서 점차 과거를 극복하고 나름대로의 삶을 구축해 나갑니다. 미혼 직장 여성을 위한 여성 회관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폭넓은 대인 관계를 맺고 명랑한 여인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나 나이가 서른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는 그녀에 대해 주변에서는 말이 많아집니다. 우연히 친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엿들은 그녀는 자신에게 별 이상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지만, 결혼 상대를 쉽게 구하지 못해 혼자서만 애를 태웁니다. 그러던 중 극장에서 우연히 만난 리처드 터너라는 농부에게 마음을 주고 그와 결혼할 생각을 굳힙니다. 그녀가 리처드와의 결혼을 성급하게 결정한 것은 모두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였는데, 결국 이것이 그녀의 불행을 자초하고 말게 됩니다. 우선은 결혼을 하고 봐야겠다는 마음이 앞서서 사랑이 없는 결혼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리처드는 시골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농부로, 자기 자본이 없었기 때문에 막대한 빚으로 농장을 시작했지만, 그동안 운이 따라주지 않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가정을 갖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서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결혼은 생각지도 못했고, 조금이라도 형편을 낫게 하려고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그 길만이 살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연히 도시에 나갔다가 메리를 만나고부터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멋만 부릴 줄 아는 도회지의 여성을 혐오했던 리처드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메리 앞에서는 그러한 감정도 사라져 버리고, 인사를 나누고 난 다음부터 그녀의 환상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메리와 결혼을 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고 결혼을 강행합니다. 이처럼 결혼 그 자체에만 신경을 쓰고, 그 밖의 다른 요인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시작된 메리와 리처드의 결혼이 순탄할 리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가난한 시골 생활을 지극히 혐오했던 메리는 가난에 찌든 생활이 계속될수록 불만이 쌓여 갔고, 마침내는 집을 뛰쳐나와 탈출을 시도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옛날의 유능하고 매력적인 자신이 아님을 발견하고 리처드의 손에 이끌려 무기력하게 돌아오고 맙니다. 그때부터 그녀의 내면세계의 붕괴는 더욱 가속도로 진행됩니다. 생활에서 받는 압박 때문에 성격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해 가면서, 메리는 터질 듯한 격한 감정을 원주민 일꾼들에게 터뜨립니다. 그 결과 메리의 집에서 일하던 하인은 그녀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항상 금방 바뀌게 됩니다. 특히 리처드가 열병에 걸려 자리에 누운 후 자신이 한동안 농장의 일꾼을 감독하게 되었을 때, 그녀의 학대와 경멸감은 극에 이르러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시골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가난한 농부 리처드는 결코 이상적인 남편이 될 수 없었고 시골에서의 생활은 쓰라린 과거의 기억들을 되살아나게 만들면서 그녀를 서서히 붕괴시켜 갑니다. 결혼 후 메리는 모든 것이 못마땅하기만 했습니다. 자신이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결혼이라고 생각하면서 결혼 자체를 부정해 버리기도 합니다. 리처드는 그런 메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반감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리처드의 책임도 상당 부분 있었는데, 항상 돈을 쉽게 벌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앞서 어설픈 솜씨로 무모한 일만 시도하여 실패를 자초했고 이것이 그들의 결혼을 더욱더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큰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는 가운데 신비스럽고 우람한 체격의 흑인 하인 모세와 리처드의 농장으로 일을 배우러 온 이지적인 영국 청년 토니 마스턴의 등장은 상황을 새로운 방향으로 몰고 갑니다. 더 이상 하인을 해고했다가는 두고 보지 않겠다는 리처드의 격한 언사와 위압감으로 메리는 다른 하인들과 달리 모세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끼며 그를 붙잡아 두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흑인이라면 이를 갈 정도로 혐오했던 그녀에게 그것은 큰 변화였을 뿐 아니라 주종 관계 자체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메리와 모세의 기묘한 관계 속에 이번에는 영국 청년 토니가 개입합니다. 리처드의 농장에서 일을 배우며 리처드를 도와준다는 뜻으로 그곳에 온 토니는 이지적이며 아직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래서 메리는 혹시 그를 통해 자신이 구출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게 됩니다. 이 때문에 메리와 모세와 토니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긴장은 마침내 모세가 메리를 죽이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토니에게 걸었던 기대마저 허물어지자 이전보다 더 큰 실의에 빠진 메리는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그녀를 살해한 모세는 사람들이 그녀의 시신을 발견할 때까지 집 근처에서 기다립니다. 다른 한편, 리처드는 그렇게 건강했지만 말라리아에 한번 걸린 이후로는 계속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 아내와의 갈등으로 인한 마음의 병까지 겹쳐 결국에는 완전히 폐인이 되고, 메리가 죽고 난 후 슬래터의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호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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